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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 1년내내 ‘시나리오 검토중’…노는 배우 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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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 김범석]
장면1. 지난주 서울 강남의 한 와인바. <그놈 목소리>의 박진표와 <타짜>의 최동훈, <1번가의 기적>의 윤제균 감독이 만나 와인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최 감독과 윤 감독은 처음 보는 사이. 이날 모임의 주선자는 유력 연예기획사 N사 대표다. 친목도모 자리였지만 흥행 감독들의 차기작 계획과 자기 배우들의 출연 여부를 타진해볼 수 있는 비즈니스 성격이 가미돼 있다.
장면2.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건물. 쇼박스가 최근 제작 강화를 위해 오픈한 '모션101' 사무실이 북적이고 있다. 시나리오가 담긴 서류봉투를 든 제작자와 프로듀서가 쇼박스에서 발령 받은 직원들을 만나고, 가끔 매니저들의 모습도 보인다. 이들의 대화는 대개 "축하드린다"로 시작해 "저번에 얘기했던 건 고민 좀 해보셨습니까?"로 끝난다. 투자 유치 혹은, 공동 제작 여부를 알아보기 위한 발걸음들이다.
같은 시각 장면3. 한 프리랜서 프로듀서와 CJ엔터테인먼트 한국영화 투자팀 직원의 대화 한 토막. "시나리오가 좋던데 개발해보죠. 저희 제작팀에 들어와 공동 제작하시거나 저희 파트너십 영화사를 소개해 드릴까요?" "…."
▲브랜드 있는 감독을 잡아라
급속한 투자 위축의 여파로 한국 영화 제작 시스템이 재정비되고 있다.
멀티플렉스를 보유한 대기업의 파워가 한층 강화되고, 브랜드 있는 감독들의 입지 역시 더욱 단단해질 전망이다. 반면 한 두 작품을 제작했거나 창립작을 준비중인 제작사는 거의 고사될 위기에 놓여 있다. 스타와 스태프들도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과 영화 펀드의 투자 유보는 제작 편수 감소로 연결되고, 이는 고스란히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 조명 퍼스트 기사는 "못해 먹겠다.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라며 짜증을 냈다. 스크린쿼터 축소에 이은 영화계 '고난의 행군' 속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를 반증하는 사례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업계 맏형 격인 CJ엔터테인먼트는 요즘 영화사 등급 분류 작업 때문에 눈코 뜰 새 없다. 여러 편의 제작 경험이 있거나 흥행작을 낳은 영화사는 A급, 서너 편 이상의 작품을 만든 곳은 B급, 신생 회사를 포함한 나머지는 C급으로 나누고 있다.
CJ는 A, B, C로 분류된 영화사들과 손잡을 경우 각각 6(CJ):4(영화사), 7:3, 8:2로 수익 배분을 하겠다는 복안을 세워두고 있다. 누적 적자를 메우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설명이다. CJ의 한 관계자는 "연말까지 5~6편의 한국 영화에만 투자한다는 게 현재까지의 내부 방침"이라고 말했다.
▲노는 배우 많아진다
쇼박스와 롯데엔터테인먼트도 올초부터 보수적으로 변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같은 영화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지만 확신이 안 서는 작품에는 뒷짐을 쥐고 있다. 파이를 키우기 위해 앞다퉈 콘텐트 확보에 열을 올리던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풍경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배우들의 출연료도 거품이 빠지고 있다. <아들>에 출연한 차승원은 저예산 영화라는 점을 감안해 평소 개런티의 절반 수준(2억원)을 받았고, 4~5억원을 받던 톱 클래스 배우들도 5000만~1억원 가량 '네고(협상)'를 허락하고 있다.
한지승 감독의 <싸움>에 출연하는 김태희도 시네마서비스와 출연료를 놓고 줄다리기 중이다. 고통 분담을 호소하는 영화사 얘기를 들어 줄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처한 것이다. 출연료가 깎이더라도 영화에 출연하는 연기자는 그나마 행복한 편이다. 1년 내내 '시나리오 검토중'이거나 TV로 방향을 트는 영화 배우들도 상당수 늘어날 전망이다.
제작자들의 위상도 흔들리긴 마찬가지다. 제작 노하우가 탄탄한 곳은 문제가 없겠지만 신생 제작사는 기획 프로듀서 역할에 만족해야 할 상황이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이같은 현안과 7월부터 바뀌는 스태프 처우개선을 앞두고 지난 주말 1박2일 긴급 워크숍을 다녀오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제작자는 "돈 가진 자들의 횡포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고 항변했다. 또다른 영화사 대표는 "강한 놈이 오래 가는 게 아니라 오래 가는 놈이 강한 놈이라는 영화 대사가 남의 얘기가 아닌 것 같다"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김범석 기자 [kb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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