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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등장 인물 이름 이렇게 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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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작가에게는 새하얀 모니터 위에서 눈을 깜빡거리며 자신을 압박하는 커서를 힘겹게 이동시켜가는 고통 외에 두 가지 고민이 더 있습니다. 그것은 '제목 짓기'와 '등장인물 이름 짓기'입니다.
시나리오 제목은 본격적인 시나리오 작업 전에 정하기도 하고, 다 쓴 후에 정하기도 합니다. 또 영화화가 결정된 뒤 제작 기획 단계에서 바꾸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간혹 작가들이 "제목만큼은 수정불가"라며 고수하는 경우 외에는 첫 제목이 개봉 때까지 살아남기는 힘듭니다.
그에 반해 등장인물 이름은 온전히 작가의 몫입니다. 하지만 시나리오 작가에게 등장인물 이름 짓기는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닙니다.
이름은 등장인물의 성격을 잘 설명해 주는 것이 첫 번째 조건입니다. 코미디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우스꽝스런 이름이 필요할 것이고 (싸움의 기술 - 오판수 / 시실리 2km - 땡중, 똥개, 해주 / 마파도 - 충수 / 귀신이 산다 - 필기 등) 반대로 차분한 영화의 주인공들은 이름이 튀면 작품에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에 작품의 성격상 평범한 이름(봄날은 간다 - 상우, 은수 / 외출 - 인수, 서영)이 사용됩니다.
특히 코미디나 공포영화처럼 장르적 특성이 잘 나타나는 영화는 이름 하나 잘 지어놓으면 시작 부분에서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한 장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효과적입니다.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의 이름을 통해 극의 파장을 일으켰던 작품 중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올드보이'의 오대수입니다. 영화 초반에 술취한 최민식은 한탄조로 "오늘만 대충대충 수습하며 산다"며 오대수라는 이름을 밝히죠. 오대수는 이렇게 이름 뜻풀이를 통해 자신의 캐릭터까지 소개합니다.
또 하나는 '웰컴투 동막골'의 강혜정이 연기한 '여일'입니다. 미친 여자 이름치고는 너무 고상하고 예쁘기까지 하죠. 작가는 여일이란 이름을 통해 아직은 잘 알 수 없지만 고상하고 순수한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아름다운 감정을 던져줄 것을 암시합니다.
자, 그렇다면 작가들은 어떤 방법으로 이름을 지을까요? 제일 많이 취하는 방법은 역시 '그때 그때 달라요'입니다. 시나리오 쓸 때마다 내용과 캐릭터에 맞게 새로 작명을 하는 부류입니다.
이와 정반대로 시나리오를 쓸 때마다 남녀 주인공 이름이 항상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의 스타일과 가장 잘 맞는 이름을 정해놓고 장르에 상관없이 주인공 이름을 정하는 방법이죠.
이 외에 고전문학에서 괜찮은 캐릭터의 이름을 빌려오는 작가도 계십니다. 또 어떤 분은 실제 배우들을 포함한 유명인사들의 이름을 성만 바꾸거나 그냥 통째로 쓰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물론 이때도 꼭 지키는 것은 캐릭터와의 어울림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등장인물의 이름을 정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저는 주변 사람들, 과거에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떠올리면서 캐릭터와 작품 성격에 맞는 이름을 발견하면 "빙고굫" 하면서 정합니다.
작년에 시나리오를 써서 현재 주연 캐스팅 중인 작품의 남자 주인공은 옛날에 영화 공부를 같이 했던 형님의 이름이고 여자 주인공은 군대에서 막 제대하고 사귀었던 옛 여자친구의 이름입니다. 또 그 주인공의 친구 이름은 3년 전 암으로 죽은 제 친구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실제 인물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영화 작업을 할 때 감정이입에 가끔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재미있습니다. 영화가 개봉되면 제가 그들에게 이름 저작권료로 술을 사야할지, 아니면 영화에 이름을 언급해 유명인으로 만들었으니 술을 얻어 마셔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파토스 (원작자의 요청에 따라 URL은 기재 하지 않습니다)
*이 글은 블로그 플러스(blogplus.joins.com)에 올라온 블로그 글을 제작자 동의 하에 기사화 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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