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겉으로만 앳된 척‥벼랑끝 ‘아이들’ 그룹 생존법 |
 |
|
|
|
|
| |
|
|
겉으로만 앳된 척‥벼랑끝 ‘아이들’ 그룹 생존법 【서울=뉴시스】
지난해 한국 대중음악계 최대 이슈는 역시 ‘여성 아이들(idol) 그룹 부활’이었다. 지난해 대표곡은 ‘원더걸스’의 ‘텔미’였고, ‘소녀시대’는 버라이어티계를 휘어잡았다.
반면, 한국 아이들 산업의 원형이 되는 일본은 올해가 그렇다. 10년간 ‘대표 여성 아이들 그룹’ 자리를 꿰찼던 ‘모닝구 무스메’의 급격한 위상 하락으로 시장이 새롭게 열렸다. 마침내 다음 세대로 바통이 넘겨졌다.
새롭게 열린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여성 아이들 그룹은 실로 다양하다. 헬로프로젝트는 ‘모닝구 무스메’를 대체할 차세대 주자로 ‘큐트’를 선택했다. 지난해 일본레코드대상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하고 NHK 홍백가합전에도 첫 출장해 후계자로서의 요건을 모두 갖췄다.
아키바계 아이들 위력을 보여주며 ‘오타쿠 결집력’을 재확인시킨 ‘AKB48’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근미래 테크노팝 아이들’이라는 긴 수식구의 ‘퍼퓸’도 위상 확대 중이다. 후지TV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도링구!’를 통해 결성된 같은 이름의 그룹도 점차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다.
군웅할거하는 이들 차세대 중 가장 주목해야 할 그룹은 단연 퍼퓸<사진>이다. 퍼퓸은 여러 가지 면에서 혁신적이다. 매너리즘적 발상으로 기존 오타쿠 시장을 노리는 다른 그룹들과 판이하게 다르다. 차세대 캐치프레이즈에 걸맞게 차세대적 콘셉트로 무장한 유일한 그룹이다.
퍼퓸은 희한한 그룹이다. 일본 아이들치곤 ‘고령’에 속하는 대학 1년생 3명, 니시와키 아야카, 오오모토 아야노, 가시노 유카로 구성되었다. 그렇다고 애초 ‘대학생 그룹’으로 기획됐던 건 아니다. 놀랄 일이지만, 이들은 초등학교 시절인 2001년 결성되어 활동 9년차로 접어든 베테랑이다. 오랜 무명생활 끝에 빛을 본 대기만성형 아이들인 셈이다.
그러나 퍼퓸의 진정한 차별성은 이런 언더도그 신화가 아니다. 그보다 더 근원적인 부분, 시장 차원의 면에서 확실히 다르다. 퍼퓸은 언더그라운드 시장과 오버그라운드 시장을 한꺼번에 포섭하며, 그 합으로 새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독창적 콘셉트로 등장했다.
퍼퓸은 ‘근미래 테크노팝 아이들’ 수식구처럼 일렉트로니카 지향 그룹이다. 그러나 흔히 예상하듯 ‘아이들 음악 수준’의 ‘뽕끼’ 테크노에선 크게 벗어나 있다. 오히려 그 반대, 즉 일본 대중음악으로서 필수요소에 가까운 뽕끼를 편집증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가볍고 흥겹지만 어딘지 건조한 느낌이 드는 캔디팝적 베이스에 일렉트로니카를 접목시켰다. 일본에서 태어났으되 일본색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시부야 케이 음악에 더 가깝다. 복고와 미래지향을 동시에 아우르는 경향도 같다.
이는 상당부분 퍼퓸의 사운드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나카타 아스타카 영향이 크다. 나카타는 시부야 케이 2세대로 분류되는 듀오 ‘캡슐’의 일원이기도 하다. 애초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었던 것이다. 이런 탓에 퍼퓸은 기존 아이들 시장에서보다 일렉트로니카를 중심으로 한 마니아 시장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여기까지는 사실 그다지 새롭지만은 않은 부분이다.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 프로듀서가 되어 키워낸 아이들은 많다. ‘피치카토 파이브’의 고니시 야스하루가 이끄는 레디메이드만 해도 꾸준히 신인을 발굴하고 있다. 퍼퓸이 정말 흥미로워진 시점은, 이들이 아이들 시뮬레이션 게임 삽입곡으로 ‘우연히’ 뜨게 된 후 일반대중에게 노출되면서부터다.
이들은 언더그라운드적 분위기, 시부야 케이적 냄새를 전혀 풍기지 않았다. 오히려 지독할 정도로 메인스트림 소녀 아이들 이미지에 맞췄다. 귀여운 소녀풍 의상을 입고 나와, 자신들 음악이 지닌 ‘음악산업 내 지정학적 위치’ 따윈 알지도 못하는 듯 천진하게 행동했다. “우리가 보이는 건 이래도 노래는 좋아요” 등의 코멘트로 음악과 자신들 개인과의 차이를 벌려놓았다.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등장해 개그맨한테 머리를 얻어맞는 바보 노릇도 하고, 아이들 그룹 특유의 인사 포즈도 서슴없이 취했다. 노출되는 형식은 천상 아이들이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시부야 케이의 기존 팬층, 즉 음악 마니아층과 아이들 그룹의 고정 팬층이 합산돼 음반을 팔아줬다. 음악적 방향성과 외형적 콘셉트와의 부조화에 매력을 느낀 일반대중도 이에 가세했다. 아이들 음악을 소비한다는, 또는 시부야 케이 음악을 소비한다는 고정관념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아 수용폭이 넓어졌다.
첫 주 판매량은 아이들 팬층이 채워주고, 그 이후부턴 일반대중이 반응해 롱런 싱글이 됐다. 음악적 퀄리티와 신선도가 받쳐주니 한 번 사준 소비자들 중 상당수가 고정팬화 됐다. 16일 등장한 새 싱글 ‘베이비 크루징 러브’는 발매 첫 주에 전 싱글의 배 가깝게 팔려 오리콘 위클리 3위에 랭크됐다.
이처럼 독창적인 퍼퓸의 시장발상은 한국 대중음악계에도 힌트를 준다. 한국 역시 현재 일본 대중음악계와 똑같은 딜레마를 지니고 있다. 뜨려면 아이들이 돼야 하지만, ‘아이들 음악 전형’에 함몰된 음악은 대중적 파급력이 거의 없다. 질리는 건 둘째 치고, 뭐가 뭔지 구분도 잘 안 된다. 그러다보니 구매대상이 한정돼 버렸다.
그렇다고 신선하고 도전적인 음악을 하자니 언더그라운드에 파묻힌다. 뚫고 나올 방도가 거의 없다. 이런 시점에는 ‘퍼퓸식 발상’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음악의 신선도와 진보성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 프로듀서를 맡아 해결하고, 다른 부분은 기존 아이들 그룹 기획사 스타일대로 밀고 나간다는 발상 말이다.
물론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중에도 외모와 버라이어티적 재능을 겸비한 이들이 있지만, 그래도 이들은 여전히 메인스트림 스타가 되기 힘들다. 이들이 아무리 TV에서 유치한 농담을 하고, 슬랩스틱을 보여주고, 개인기를 펼친다 해도 이들에겐 기본적으로 아티스트적인 ‘무게감’이 실린다.
현재 대중은 한없이 가벼운 소비를 원한다. 스타를 자신과 동급 또는 동급 이하의 위상으로 놓고 소비하길 원한다. 이런 때 필요한 것은 퍼퓸과 같은 ‘프론트’, 즉 ‘노래 인형’이다. 음악은 음악대로 신선해 호감을 사지만, 정작 스타로서 소비하는 것은 아티스트적 위상과는 거리가 먼,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아이들이다. 대중의 위화감을 줄이면서도 구매욕구를 채워주는 절묘한 결합이다.
한국도 이런 시장혼합을 생각 안 했던 건 아니다. 그러나 퍼퓸과는 정반대로 갔다. 지극히 대중영합적인 음악과 아이들적 소비·판매형식을 만들어놓고, 이미지 면에서만 언더그라운드로 포장해 “우리는 아이들이 아니다”를 외치게 했다.
YG엔터테인먼트 아이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방식도 물론 먹히긴 하지만, 이런 종류의 ‘위선’은 한계가 있다. 실체보다 ‘높게 잡은’ 이미지는 수명이 짧고 효용성이 점차 떨어진다. 시간이 지나 음악 스타일이 고정될수록 불리해진다. 위선의 갭에 짜증을 느끼게 된다.
반면 퍼퓸 같은 방식은 다르다. 지극히 탈아이들적인 음악을 들고 나와 지극히 아이들적인 이미지와 소비·판매형식으로 접근, “우리는 아이들이다”를 외치게 했다. 이런 종류의 위선은 충분히 즐길 수가 있다. 실체보다 ‘낮게 잡은’ 이미지는 그 괴리에서 거부감을 없앤다. 오히려 키치적 흥미를 계속 잡아끈다.
퍼퓸은 사실 일본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시급히 등장했어야 할 콘셉트다. 언더그라운드 시장이 착실히 다져진 일본에 비해, 한국은 오버그라운드, 그 중에서도 아이들만 먹고 산다. 노래 표절, 스타일·이미지 카피만 하지 말고, 이런 시장발상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반드시 있다. 진정한 벤치마킹이란 ‘상품’ 자체가 아니라 상품의 ‘개념’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l.com
<저작권자ⓒ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 |
|
|
|
|
|
|
|
|
| |
|
|
| |
|
|
|
|
